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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나향 이야기

추억의 모교 - 숭문중학교 가는 길

by 죽나향 2023.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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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차를 이용하여 잠시 국민학교 때 내가 살던 집을 찾은 적이 있다. 세월은 흘렀지만 큰 틀은 변화 그대로였다. 반가움과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며칠 굶은 사람의 식욕처럼 솟구쳤다. 그리고 또 한 번 내가 살던 곳을 찾아 나선다. 여유를 가지고. 카메라 가방을 둘러메고, 천천히 걸어서..... 아마도 나이가 든 탓이리라.

2호선 이대입구역에서 하차하여 횡단보도를 건넌다. 바로 저 건물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다. 혹여 별다방을 기억하시는지? 약 30~40년 전에 대흥동, 염리동에 살았던 분이라면 아마도 별다방을 기억할 것이다. 그때 나는 아주 어린 나이였기에 독립된 출입은 할 수가 없었고, 간단한 심부름을 위해 별다방을 몇 번 갔던 적이 있다. 꽤 넓은 실내공간과 여기저기 자리 잡은 소파가 그 당시에는 무척이나 고급스럽게 생각되었다. 여기서 사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많았던 별다방 앞........ 국민학교 6학년 때던가? 용돈이 궁해서 과자상자를 흰 도화지로 이쁘게 포장하고 동전이 충분히 들어갈 구멍을 크게 뚫고 측면에는 '불우이웃을 도웁시다'.....라고 칠하고 또 칠하여 눈에 잘 들도록 두터운 글씨를..... 아마도 성탄절이나 그 하루전날이었을 것이다. 동네 친구하나와 아마도 동생이었을 것이다..... 하여간 뜻이 맞는 인물 셋이서 얼굴에 철판을 깔고, 흰 박스를 가슴높이로 정성스럽게 들고는 바로 이 이대입구 앞으로 진출을 했다. 누가 "불우이웃을 도웁시다"라고 외쳐주기를 기대했지만 쉽게 뱉어지지 않는 말인지 우리 셋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서로 눈치만  보기를 한참.... 별다방에서 출장? 나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미스김, 미스리에게는 오백 원짜리 천 원짜리가 차곡차곡 모여지는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어여쁜 미스리 누나에게 지폐를 건네던 신사에게 달려가 눈도장을 찍었으나 매정하게 돌아섰다. 기억으로는 한 시간 이상 이대입구 별다방 주변을 서성였지만..... 그렇게 나의 첫 사업은 시작하기가 무섭게 폐업신고를 마쳤다.ㅠㅠ 그때 별다방에서 출장 나왔던 누나들, 미스김, 미스리는 지금 다 뭘 하고 있는지~

추억의 모교 - 숭문중학교 가는 길
별다방이 있던 건물

 

 

없어졌을 확률 100%인 대흥극장을 카메라에 담고자 두 눈을 크게 뜨고 길을 걷는다. 추억을 되씹을만한 간판이나 건물들은 없다. 마치 타임캡슐을 연상시키는 은행이 시선을 잡아끈다. 대흥극장은 몇 가지 추억거리를 간직한다. 5학년 때던가.... 이순신 장군 이야기를 엮은 영화가 있었다. 오래전 일이라 이순신 역할을 맡았던 남자 주인공의 이름이 기억나질 않아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영화 '명량' 이야기 밖에 없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서국민학교(초등학교)에서 단체로 이 영화를 보러 갔는데(이 시절 영화를 일 년에 한두 번 봄) 이순신 장군의 고문받는 장면에서 여학생들이 질질 짜는 모습이 재미있다고, 그 슬픈 장면에서 낄낄 거리던 친구들... 집에 돌아와 부모님과 누나 동생에게 이순신 장군에 대해 일장연설을 했던 기억들...... 또 한 번은 '캐리'라는 공포 영화를 보러 갔다가 잘못된 정보로 인해 당시 유명한 여배우 정윤희의 애로 영화를 보게 되었다는......ㅋ 아마도 한서국민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이 대흥극장을 제외하면 영화관을 가본 일이 없을 것이다. 그때는 충분히 그러했다.^^

추억의 모교 - 숭문중학교 가는 길

 

 

어렴풋이나마 저 골목길이 생각난다. 그때도 저렇게 오르막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저 삼계탕집이 만두가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맞다면, 같이 과외 다니던 1년 후배 백ㅇㅅ이라는 녀석의 엄마가 경영하던 그 만두가게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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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단독주택(기와집이면서 일층집)이었던 집에 개 한 마리씩은 다 있었다. 지금의 작은 애완견이 아니라 개집이 따로 필요한 큼직한 개가 있었다. 그 당시 개는 정말 개 다웠다. 개가 있는 집은 대문 옆 기둥에 주인장의 문패와 나란히 개조심이라는 빨간 간판이 붙어 있었다. 주인이 아닌 사람이 집에 들면 개가 사람을 물었다. 지금 생각하면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하겠지만 그때 개들은 정말 개 같았다. 내 동생도 물린 적이 있다. 오랜 나날 치료(개 주인 부담)를 받았다. 그것도 개주인 눈치 보여 일찍 치료를 마치긴 했지만....... 그때에 비하면 요즘 개는 개도 아니다. 개의 권위가 바닥을 친다.

추억의 모교 - 숭문중학교 가는 길

 

 

눈을 부릅뜨고 찾았건만 대흥극장 자리와 그 옆에 시민의원은 결국 눈에 띄지 않았다. 그 자리가 어딘지도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저 파출소가 나오면 대흥극장과 시민의원은 분명히 지난 것이다. 저 파출소 기억이 난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오랜 세월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저 길로 걷다가 오른쪽으로 가면 친구 노ㅎㄱ네 집이 나왔고 조금 오르막 어딘가에 친구 이 ㄱ ㅎ네 집도 나왔다. 깡패형들이 많이 모여 놀았다던 노고산도 골목 틈새로 보인다. 저 산이 그 당시에 정말 산이었는데...... 지금은 뒷동산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세월이 흘렀다는.........^^

추억의 모교 - 숭문중학교 가는 길

 

 

학교 가는 길. 바로 숭문중학교 가는 길이다. 그때도 조금 내리막길이면서 오른쪽으로 휘었다가 학교 후문을 지나면 다시 왼쪽으로 휘어졌던 길~ 그리고 내리막이 끝나면 숭문중고등학교 사이를 흐르는 세느강의 끝자락을 만났던 기억이..... 이번에는 거기까지 내려가지는 못하고 학교 후문을 통해 이내 학교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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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가 뭔지를, 최루탄이 뭔지를 가르쳐준 학교다. 중학교 1학년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2교시 정도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윤자경 선생님으로 기억된다. "갑자기 매운 냄새가 나더라도 동요 없이 급히 창문을 닫고, 웅성임 없이 수업을 계속한다"는 설명이 있은 후 머지않아 세상에서 처음 맞는 묘한 기운이 코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서강대 쪽에서 바람에 실려온...... 세월이 지나 그것이 최루탄이라는 것을 알았다. 불행하게도 그 느낌은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 내내 맡을 수 있었다...... 전ㄷㅎ 덕분에.ㅎㅎ 아~ 그날은 서강대학교에서 데모가 예정되었던 날이었다. 멀리 서강대학교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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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반가운 간판이다. 그때도 있었다. 대흥 주차장~ 그 당시 있었던 것이 그대로 있다는 것에 대한 반가움. 그 반가움을 어찌 설명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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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학교를 다닌 적이 있었다. 뒤에는 간혹 친구 임ㄷㅅ이 함께 타고 같이 등교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버스정류장이 없었다. 길은 그때보다 많이 좁아진 듯 보이는데......

추억의 모교 - 숭문중학교 가는 길

 

 

그때는 방음벽 같은 것은 없었고...... 근데 웬 빨강? 좀 감각이 없는 분이 자기주장이 강했나 보다........ 쩝!

추억의 모교 - 숭문중학교 가는 길

 

 

어떻게 찍다 보니 숭문중학교는 없네.ㅠㅠ 오른쪽 기둥에 숭문고등학교가 있는 것처럼 왼쪽 기둥에 숭문중학교가 떠~억하니 새겨져 있다. 기억나는 문이다. 집 방향이 어찌어찌하여 정문으로 등하교를 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항상 이 후문을 이용했는데, 한 학년 또는 두 학년 선배인 선도가 이 문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가장 많이 지적받았던 것이 훅불량이었는데, 확인하고 확인해도 이곳을 지날 때는 후달렸다. 그놈의 완장이 뭔지........ 당시만 해도 완장을 두르면 목에 힘이 들어갔다. 동사무소 아저씨도 완장을 둘러야 일을 할 수 있었고, 민방위 훈련 때도 완장을 둘러야 통솔을 할 수가 있었다. 일본식 산물들.......ㅠㅠ

이곳을 통과하면 바로 오른쪽에 건물이 있고 교실들이 즐비한데 이병호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으로 계셨던 중 3 때 그 교실........... 바로 그 건물일 것이다. 아~ 사두(蛇頭)님의 지휘봉에 안 맞아 본 사람이 몇 있을까? ㅎㅎ

추억의 모교 - 숭문중학교 가는 길

 

 

역사와 권위가 깊었던 학교로 기억된다. 그때도 지금처럼 서기원 선생에 대해 많은 세뇌교육을 받았던 것으로....ㅎㅎ 당시 교장 선생님은 서연호 교장 선생님으로 기억하고 있으며, 서기원 선생은 교장 선생님의 아버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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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때 미술선생님(홍익대 미대를 졸업하신 강?? 선생님)이 생각이 나서 한 장 담은 사진이다. 미술시간이 야외에서 이루어지면 주로 수채화를 그렸었는데 그 수채화의 주인공으로 자주 선택되었던 나무가 있었으니 바로 다음 사진의 중앙에 있는 나무가 그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 기억으로는 굴곡이 참 아름다웠던 것으로 기억되고, 또한 세월이 30년 이상 흘렀다면 나무의 풍채가 보통이 아닐 터.... 어쩌면 그 나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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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하키를 하던 친구들이 생각난다. 몇몇 있었는데 통 이름이 기억나질 않는다. 당시 체육선생님이 필드하키를 직접 지도하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바닥에서는 유명한 분이셨다. 바로 박영조 체육 선생님...... 간혹 텔레비전에도 나오셨고,... 근데 하키선수들 훈련시킨다고 엄청 때렸다........ 혹시 이글 보시려나........ 끄~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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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의 상징이었던 단상에 먹다 남은 요플레가 뒹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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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도 그대로다. 그때 그 모습 그대로다. 색깔도 그대로인 것 같다. 그때는 쌍용 시장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그때 그대로다. 어쨌거나 지금은 염리시장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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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리시장을 뒤로하고 정면을 바라다보면 보이던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세느강! 숭문중학교 운동장이 하나 있고 그리고 고등학교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그 건물들을 지나면 개천이 하나 나오는데..... 우린 그 개천을 세느강이라고 불렀다. 그 세느강이 없어졌다. 복개되었나 보다. 아래 사진의 중간 도로가 세느강이 있어야 할 자리인데..... 축구를 하다가, 야구를 하다가 공이 세느강에 빠지면 건지질 못하고 그저 떠내려가는 공을 구경만 하던 기억이.....ㅎㅎㅎ

추억의 모교 - 숭문중학교 가는 길

 

 

참 많이도 낡았다.

추억의 모교 - 숭문중학교 가는 길

 

 

정문이다. 숭문중학교 숭문고등학교의 정문이다. 변한 것이 있을터....... 그러나 잘 모르겠다........ 세월이 너무 많이 흘렀다. 기억과 기억을 연결해 주는 징검다리가 결여된 채 자꾸만 세월은 흘러만 간다. 또 언제 들러볼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좀 더 많은 기억들이 떠오르기를 바란다.

추억의 모교 - 숭문중학교 가는 길

 

 

35년 만에 찾은 모교..... 도란도란 얘기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였다면 참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훨씬 더 많은 기억의 편린들이 제 자리를 찾았을 수도...... 더 살다 보면 기회가 또 오겠지 뭐!! [14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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