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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이야기

론진 콘퀘스트 쿼츠 시계(Longines Conquest Quartz)

by 죽나향 2022.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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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학대하던 친구가 있었다. 특별한 장식 없이 초침, 분침, 시침 그리고 날짜창이 있었던 심플한 시계였다. 그 흔한 금도금 흔적도 전혀 없고 유리에는 심하게 흠집이 있었던 둥근 형태의 세이코-SEIKO 시계였다. 게다가 시계줄도 끊어져 없어지고 머리만 남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질고도 질긴 생명력만을 간직한 볼품없는 시계였다. 개로 치면 족보도 없고, 털도 화려하지 않고, 씻질 않아 털이 여기저기 뭉쳐 달라붙고, 어디서 어떻게 당했는지 다리도 살짝 저는, 동네 길바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인에게 버림받은 강아지 같은 형색이었다. 모양새나 기능으로 봐서는 전혀 눈길이 가지 않는 시계였으나, 묘하게도 시계를 접한 지 딱 이틀 만에 나는 그 시계의 주인이 되어있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집에 있던 시계라면서 2천 원에 판매하겠다고 70여 명 반 친구들에게 두루두루 시계를 소개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손목시계는 어른들만의 전유물이었고, 간혹 반에서 시계를 차고 다니는 친구가 있다면 몹시 부러움을 살 정도로 시계는 귀한 물건임이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2천 원은 쉽게 손에 쥘 수 있는 적은 돈이 아니었으며, 시계의 상태가 온전치 못했던 터라 구매자는 쉽게 나오질 않았다. 몸이 달은 판매자는 쉬는 시간만 되면 시계의 핵심기능을 자랑하고 다녔다. 수동으로 태엽을 감아서 밥을 줘도 되지만, 손목에 차고 돌아다니기만 해도 태엽이 저절로 감기는 기능(오토매틱-Automatic)이 있다며, 쉬는 시간 매번 손목을 미친 듯이 흔들고 다녔다. 그리고 가끔은 시계를 망치 다루듯 책상머리를 쾅쾅 치고 다녔다. 그 친구 왈 "이렇게 해도 태엽이 감긴다"며..... 불쌍한 시계ㅠㅠ

그 친구의 시계 학대는 다음날도 이어졌다. 마치 시골 장날에 개를 한 마리 데리고 와서는 장날이 끝나기 전에 꼭 팔아치워야 하는 절박함이라도 있는 듯, 그래서 개에게 시선을 집중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해버리는 개장수 같은 녀석이었다. 나는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개에게 가장 많은 시선을 주는 사람이 되었고, 결국 불쌍한 개를 입양하고 마는, 마음 여린 어린아이가 되어버렸다. 거금 2천 원을 어떻게 조달하려 했는지 외상으로 그 손목시계의 주인을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이후 그 개는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할 수도 있었고, 다친 다리를 수술할 수도 있었으며, 미용도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새 주인에게 사랑이라는 것을 받을 수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일이며, 그렇게 그 시계는 나의 첫 시계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세상은 전자시계가 판을 치고, 일본의 쿼츠 시계가 스위스 시계산업의 목을 조였다. 당시만 해도 시계에 큰 관심이 없었던 나는 전자시계와 사은품 시계 몇 개를 접하고는 예물시계로 갈아탈 나이가 되고 만다. 20년 전에 지금의 마누라와 함께 구입한 론진 콘퀘스트 쿼츠 시계(Longines Conquest Quartz)가 실은 오늘의 주인공이다. 중학교 2학년 때 구입한 그 시계가 아직도 수중에 있다면 좋았을텐데...... ^^



론진 콘퀘스트를 구입하게 된 배경은 그랬다. 결혼을 앞둔 그 당시, 퇴근 후와 주말이 즐거웠다. 사랑하는 애인(지금은 그냥 의리로 같이 살아주는 마누라)과 평생 다시 누릴 수 없는 쇼핑 생활의 즐거움에 빠져 한주는 무대의상, 또 한주는 요리 도구, 또또 한주는 전자제품, 그리고 또또또 한주는 번지르르한 가구, 그리고 또또또또 한주는...... 몸에 치장하는 귀금속을. 난생처음으로 돈을 펑펑 써질렀던 시절. 아마도 마음속에 정한 상한선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아직은 정식으로 내 것이 되어있지 않은 애인 앞에서, 그녀가 원하는 것을 대부분 다 들어주고 싶었던, 그래서 그렇게 했고, 할 수가 있었던 시절. 불쌍한 애인도 나와 비슷한 상황이 아니었을까? ㅋㅋ

지금은 없어졌지만 을지로 쁘렝땅 백화점. 반지, 목걸이, 팔찌, 시계... 예물을 구입하는 날이다. 평소 백화점을 갈 일도 별로 없고 이용을 거의 해보질 않아, 아이쇼핑을 위해 매장에 입장하면 단정히 차려입은 직원들의 과잉친절이 불편했던 시절....., 하지만 이날은 좀 당당했다. 아이쇼핑이 아니라 지를 수 있는 날이었기에!

내 경우 반지는 거의 착용을 하지 않아, 훗날을 기약하는 다섯 돈 순금반지로 후딱 정했지만, 애인은 그 작은 몸집에 꽤 많은 것을 달아보고자 품목별, 디자인별, 색상별... 하나를 간택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지루했던 시간을 어찌 참아내었는지~. 여하튼 시계 순서가 되었고 "요즘 잘 나가는 시계가 뭔가요?" "가격대는 어느 정도인가요?" "좀 더 심플한 시계는 없나요"... 그 당시 잘 나가던(유행했던) 예물시계는 로만손이었다. 금도금 찬란한 것들이 꽤 유행이었고, 남녀 세트로 만들어진 것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많이 찾았던 제품들이 남녀 세트로 2~30만 원 정도로 비교적 저렴했으나, 화려하기는 했지만 눈길이 머물지는 못했다. 유리관 속에 널브러진 수많은 시계들에게 짧은 시간씩 시선을 할당하기를 여러 번... 결국 "다른 시계는 없나요?"... 매장 직원은 다른 유리관으로 나를 안내했고, 그 유리관은 조금 전의 유리관과는 다른 기운?을 가지고 있었는데,... ㅎㅎ 바로 시선이 머무는 곳이 있었으니! 아래 사진 속의 시계가 바로 그 시계다.

Longines Conquest Quartz Face
Longines Conquest Quartz Face



로만손과는 차이가 많이 났다. 개당 금액이 로만손 세트 금액의 3배가 넘었다. 잠시 망설여진다. 마음속에 정한 상한선을 넘어버렸기 때문이리라ㅠㅠ. 하지만 고민은 잠시. 어렵게 선택한 물건이라 애인의 구매의사를 확인한 후 바로 결정해버렸다. 날짜창이 없이 머리가 매우 작은, 사진 속의 내 시계와 꼭 닮은 시계 하나를 애인의 손목에 걸어주며 매우 흡족해했던 그때가 생각난다.^^

Longines Conquest Quartz
Longines Conquest Quartz



사진에서처럼 화려한 장식은 없다. 비교적 심플하며, 특별한 기능도 없다. 심지어 초침(Second Hands)도 없다. 아담히 자리 잡은 날짜창이 밋밋함을 이겨내려 애쓴다. 사파이어 크리스털을 둘러싼 베젤에 인덱스를 연장한 둥근 홈이 그나마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메탈 줄의 잠금장치가 그 당시만 해도 획기적이었으나 요즘은 흔하다. 모래시계를 감싼 채 하늘을 나는 독수리의 날갯짓이 강하게 각인되어있다.^^

메탈 브레이슬릿
메탈 브레이슬릿



제목만 보고 들어와 론진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했던 분들이 있다면 죄송하네요ㅠㅠ. 제 블로그가 늘 그렇지만 하루 빠진 과거의 일기장을 채우듯, 공감하지 못하는 나만의 독백 같은 말들을 이어가는 장이다 보니, 시계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같은 것은 없네요~ 저의 오래된 시계를 포스팅, 소개하려고 인터넷 검색창을 론진으로 여러 번 채워봤지만, 제가 가진 사진상의 모델을 찾을 수가 없더군요. 쫌 아는 척을 하고 싶었었나 봅니다.ㅎㅎ 이젠 도리어 제가 물어보고 싶어 집니다. 혹여 이 시계에 대한 내용(역사, 스펙, 등등)을 알고 계시면 댓글 달아주세요~~ 미리 "꾸벅!!"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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