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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나향 이야기

패러글라이딩의 흔적

by 죽나향 2022.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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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다양한 취미를 가진 삶을 살아왔다. 그것도 남들이 잘 안 하는 독특한 취미를 가졌다. 대부분 직업으로 해볼까? 할 정도로 한번 시작하면 정신줄 놓을 만큼 깊이 빠져 들었다. 그 취미를 대충 살펴보면, 일기 쓰기, 클래식 기타 연주, 패러글라이딩, 오디오, 분재, 기타 제작, 사진, 시계, 등이다. 이 취미들은 아직도 하라고만 하면 바로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를 놓지 않은...
이들 중에 결혼 전에 시작해서 결혼 전에 끝낸 비교적 단명한 취미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패러글라이딩이다. 패러는 1994년에 시작해서 96년 말까지만 즐기고 이번 생에서 만큼은 종지부를 찍어야만 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지금의 집사람을 만나 교제하다가 상견례를 얼마 남겨놓고 장인어른 되실 분의 호출이 있었다. "자네 내 딸과 결혼하려거든 글라이던가 뭐신가는 그만두게!" "아~ 패러글라이딩 말씀이시군요. 통계적으로 스키보다 안전하고 보드보다 안전해요. 사고 날 일이 거의 없습니다. 사고의 두려움 때문에 할 수 없다면 자동차 운전도 해서는 안 되겠지요? 아! 자동차보다 더 안전합니다...." 이러고 싶었지만 마음뿐이었으며 조용히 "네! 알겠습니다"해 버렸다.ㅠㅠ 아마도 지금의 집사람이 위험하다고 생각되어 고자질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패러글라이딩을 잘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글라이더와 혼동을 했고 낙하산과 헛갈려했다. 틈만 나면 그 차이점을 말하며 저변 확대를 노렸지만 단명으로 인해 이루지 못했다.
결혼 후 세월이 지나 만남의 자리에서 취미 이야기가 나오거나, 대화중에 글라이더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오면, 내가 경험이 있고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어 지금은 하지 않는다고 하면 증거를 보여 달란다. 그도 그럴 것이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도 여전히 패러글라이딩은 독특하고, 위험하여 특별한 사람에게만 부여된 취미 정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증거를 보여줘야 믿을 그들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머니에서 쓰~윽 꺼내어 보여주면 참 좋으련만 그 증거가 내겐 없었다. 그 자리에서야 '믿거나 말거나'했지만 사실 집에 돌아와 여러 번 찾아보기도 했다. 없다. 그렇게 증거가 없어 아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당시 가장 유명했던 글라이더 제작 업체는 세계적인 메이커 에델(Edel)이 있었으며, 그 업체에서 제작된 Zx라는 모델이 내가 타던 것이었고, 드림 글라이더로는 1994년 당시 최신 기종이었던 레인보우(Rainbow)가 있었다. 할공비가 8:1(당시로는 충격적인 수치였음)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할공비와 흰색 바탕에 무지개 빛이 영롱하게 물든 날개는 나에게 드림 글라이더였다.

그렇게 또 세월은 흘렀다. 그런데 우연히, 정말 우연히 그 증거물을 획득했다. 내 과거 흔적을 말이다. 내 말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의 얼굴이 짧은 시간에 스쳐간다. 사진 찍어 카톡으로 보내서 그들의 반응을 보고 싶다.ㅎㅎ

증거물 #1 - A급 자격증
실은 B급도 있는데 찾아봐야 손해다. 이 급에 대한 말이 많다. A급이 좋은 걸까 B급이 좋은 걸까? 답은 B급이다. B급을 가졌다고 하면 일반인은 "겨우 B?" 그래서 굳이 찾을 생각이 없다.ㅎㅎ
전면의 하단에는 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취득일이 양각되어 있다. 뒷면에는 교관의 서명이 친필되어 있다.

패러글라이딩 자격증




"본 카드 소지자는 경찰을 포함한 민간해운과 군당국의 도움과 원조를 필요로 합니다. 이 카드는 본인 외에는 사용할 수 없으며, 분실 시는 본회에 연락 바랍니다."




증거물#2 - 윈드재킷(Wind Jacket)
공비인달 - '하늘을 날아다니는 사람들'이라는 뜻.
집사람에게 입히고 핸드폰으로 급하게 찍었다.ㅎㅎ




증거물#3 - 책자
직접적 증거물이 아니라 잠시 망설임. 패러를 안타도 구입 가능.
내가 알기로는 우리 클럽에서 이 책을 구입한 사람은 없어 보였다. 난 그때도 주경야독했다.




증거물#4 - 비행수첩
결정적 증거물
한국활공협회에서 제공한 비행수첩이다. 내부에는 수첩의 일련번호가 찍혀 있으며, 나의 처녀비행부터 마지막 비행에 대한 기록이 적혀있다.

패러글라이딩 비행수첩




첫 페이지, 상단에 내 사진이 흐릿하게 보인다. 일부러 그렇게 찍었다.




이 날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추운 겨울날 남한산성. 단 한 번의 비행. 총 56번째 비행. 비행고도 약 400m. 비행시간 2시간 10분. 사용기종 슈퍼 스페이스. 우리 클럽 기록을 세운 날.



아주 옛날에 중고로 팔아버린 캐노피, 하네스, 헬멧, 레스큐, 무전기가 그립다. 장인어른 돌아가신 지가 10년도 넘었는데...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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