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아이는 회수권과 토큰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것은 삐삐가 무엇인지 시티폰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과 같다. 아주 오래 전의 교통요금 지불수단이었기에.
기억에는 그렇다. 아주 어릴 때는 버스를 탈 때 버스 요금으로 현금을 지불했다. 버스에는 운전을 하는 운전수와 버스 요금을 관리하고, 다음 정류장이 어디인지를 미리 안내(훗날 이 안내멘트는 미리 녹음된 카세트테이프에서 스피커를 통해 안내되었으며, 그 조작은 버스 운전수가 직접 했다. 그러다가 시스템의 발전으로 버스의 위치를 추적해 자동으로 안내해주는 방식으로 발전했다)해주는 버스 안내양이 있었다. 버스 요금은 그 안내양에게 지불했다. 버스 안내양은 매 정류장마다 내리는 손님의 요금을 걷어들이느라 정신없었다. 거스름돈 없는 꼭 맞는 버스요금만 건네어도 바쁠 판인데, 간혹 잔돈이 아닌 지폐를 건네는 경우 그 정류장에서의 출발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당시 버스에 오르려면 잔돈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이 에티켓이었다. 큰돈을 내거나 심지어 수표를 요금으로 내는 사람은 욕을 먹어도 싸다고 했으며, 거스름돈 마련이 어려운 관계로 "그냥 내리세요"하는 안내양이 있었던가 하면, 그 상황을 악용하는 못된 손님도 있었다. 그런 손님이 미웠는지 버스를 정류장에 세워놓고 잔돈으로 거스름돈을 기꺼이 준비해 내고야 마는 악착같은 안내양도 있었다.
요금 지불수단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인데, 샐러리맨들의 출근시간, 학생들의 등교시간은 대한민국 버스가 전쟁을 치르는 시간이었다. 퇴근시간과 하교시간은 약간의 분산이 가능하지만 출근과 하교는 거의 같은 시간에 이루어져 그 전쟁을 피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버스 이용 시 버스의 앞문으로 승차하고 뒷문으로 하차한다. 하지만 이 전쟁에는 앞뒤가 없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버스는 만원이고, 기다렸다가 다음 버스를 탄다 하더라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으니 요금만 지불하면 앞문 뒷문 가리지 않고 무리해서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무리한 승차 탓에 사람이 튕겨져 나올 정도여서, 안내양은 힘으로 손님을 밀어 넣어야 한다. 하지만 간혹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 때문에 버스 문을 닫을 수가 없다. 안내양이 버스 문을 닫을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전쟁 시간이라 안내양은 두 팔로 문틀을 잡고 가슴으로 승객을 받친 채 버스는 출발한다. 다음 정류장까지 그렇게 힘으로 버틴 안내양은 지칠 대로 지치고, 버스 문 밖으로 튕겨져 나올 것 같은 손님을 힘으로 버티지 못한 안내양은 버스에서 떨어져 사망하는 사고도 발생한다. 지하철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푸시맨(Push Man)의 등장이 이때였을 것이다.
어느 날 나는 회수권을 접하게 된다.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고등학교를 등하교할 때부터 있었다. 아마도 그 이전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현금 대신 구입한 회수권을 내는 방식이다. 우리 학교는 회수권을 학교 매점에서 판매했다. 일주일에 한 번인지 한 달에 한 번인지 조차 잘 기억나질 않지만 회수권을 판매하는 날에는 매점이 북새통을 이뤘다. 자연스럽게 학생 신분이 확인된 학교매점에서의 회수권은 일반요금보다 저렴히 지불할 수 있는 학생용 회수권이었기에 버스로 출퇴근?을 하는 학생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교통요금 지불수단이었다. 이 회수권을 안내양에게 내면서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 안내양이 좀 편해졌을까? 아니다. 버스 안내양은 회수권의 진위를 구분해야 하는 분석업무를 맡아야 했다. 악동스러운 학생 중에 회수권을 변칙적으로 잘라 10장을 11장, 심하게는 13장으로 잘라 그것도 잘 보이지 않게 구겨서 안내양에게 요금으로 지불하는 일이 빈번해지자 버스회사에서는 그 식별 업무를 안내양에게 맡겼다. 또 재주 많은 학생 중에 회수권을 그려내는 녀석들도 등장하여 회수권 분석업무까지 맡아야만 했다. 참 많은 일을 해냈던 버스 안내양.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안내양 문화는 차츰차츰 사라지고, 버스요금은 버스 계단을 오를 때 선결재하는 방식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해버리는 기이한 현상은 여기서부터가 아닐까? 쿨럭!
가령 버스요금이 200원이라고 가정하자. 손님이 버스 계단을 오르면서 천원짜리 지폐를 요금통에 넣는다. 액수를 판단한 버스 기사는 500원을 위한 버튼 1회, 백원을 위한 버튼 3회를 눌러 통 안에 있던 총 800원을 거스름 돈으로 꺼내 놓으면 손님은 거스름돈을 집어서 버스에 입장하는 방식이었다.
아래 사진의 회수권은 운이 좋게도 약 40년을 나의 우표수집 책자에서 세월을 잊고 잠자고 있었다. 그런데 서울에서 등하교했던 내가 이리, 대구, 광주 시내버스 회수권을 소지하고 있다는 점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이리-지금의 익산, 대구, 광주는 나의 등하교 경로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내가 수집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수집한 것을 얻었나? 도무지 기억나질 않는다. 쩝!
뒷면에 아무 내용도 없는 회수권도 있었지만, 이리 회수권처럼 뒷면에 청소년을 위한 상담실 안내 내용이 적혀 있는 회수권도 있었다.
"청소년 여러분의 고민을 같이 얘기해봅시다.
진로, 진학, 이성, 교우, 생활, 건강, 기타문제.
심리검사, 전화, 면접상담 이리 3 - 0791 삼동청소년상담실"
교통요금 지불수단으로 토큰도 있었다. 너무 오래되어 심하게 변색된 상태로 사진을 찍기가 불편하여, 쓰던 칫솔에 치약을 묻혀 닦아봤지만 잘 닦이지 않았다. 유난히 검붉은, 약간 큰 녀석이 일반 성인용이며, 나머지 4개는 학생용인 것으로 안다. 이것을 어찌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었는지.....
아래 사진은 각기 다른 종류 세 가지를 골라봤다. 왼쪽은 일반용이 분명하고, 중앙 또한 학생용이 분명한데, 오른쪽에 멀쩡한 녀석은 대체 뭔지 잘 모르겠다. 하단에 책이 펼쳐져 있음에 학생용 토큰으로 짐작할 뿐이다. 뒷면에는 시내버스라는 글씨가 양각되어 있다.
아래 사진의 티켓은 지하철 승차권이다. 버스와는 상관이 없는 것인데, 있기에 그냥 한번 찍어봤다.
지금은 신용카드에 교통카드 기능이 있어 버스를 탈 때나 지하철을 탈 때 지갑 채 그저 가져다 대기만 하면 된다. 학생들은 교통카드에 일정 금액을 충전하여 이용, 소진되면 다시 충전하여 사용한다. 예상컨대 조금만 세월이 더 흐르면 갖다 댈 필요도 없이 통과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 보다 더 세월이 흐르면 또 어떤 방식으로 지불수단이 진화할지..... 궁금하다. 오래 살 필요성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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