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인지 2003년인지 정확히 기억나질 않는다. 산업용 필터 영업을 하다가 잠시 외도 후 다시 필터 영업을 위해 어느 작은 회사에 입사했다. 사장은 뭘 믿은 것인지 나를 생각보다 높은 직위에 앉혔다. 그 점이 부담스러웠는지 과거 거래처의 정보를 열심히 찾다가 전자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펜맨에서 출시한 전자수첩이었는데 아마도 그 녀석이 넥스1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여하튼 그 녀석은 약 600명 정도의 거래처 담당자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배터리 공급이 끊긴 지가 오래되어 좀처럼 내용 공개를 꺼렸다. 114를 통해 전화해서 펜맨 담장자와 통화 후, 나의 구형 제품을 보낼 테니 최신 전자수첩에 모든 정보를 옮겨 달라고 부탁했고 전자수첩 값을 지불했다. 전자수첩 간의 정보 이동은 별도의 비용을 받지 않았다. 약 1주일 후 내게 도착한 전자수첩, 거기엔 기억이 새록새록 날 정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내용이 담겨 있었으니, 이 녀석이 오늘의 주인공 펜맨의 NEX2였다.
옛날 옛적에는 전화번호 50개 정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우고 다녔다. 혹시 기억하지 못할까봐 손바닥에 쏙 드는 전화번호부라는 책자가 있었고 거기엔 'ㄱ'부터 'ㅎ'까지 가나다 순으로 이름을 적고 전화번호를 기록하는 방식이었다. 세월이 조금 흐른 후 끝부분의 공란에 이메일을 적을 수 있는 전화번호부가 생기기 시작할 무렵 전자수첩이 생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많은 기간이 지나지 않아 핸드폰이 출시되었고 금세 호황을 누렸다. 이때부터 전화번호부의 사용은 물론이고 전자수첩도 급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핸드폰은 스마트폰이라는 이름으로 발전하며 모든 기억을 대신했다. 난 지금 집사람 전화번호도 모른다. 굳이 알 필요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처음 전자수첩을 구입한 때도,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전자수첩에 있어 대세는 한국샤프였다. 인지도, 종류, 스펙 등 대부분이 펜맨을 앞서고 있었으나, 단 한 가지 장점이 펜맨을 구입하게 만들었으니 그건 배터리가 완전 방전되거나 배터리를 전자수첩으로 부터 분리해도 데이터 보존이 된다는 점이다. 한국샤프의 경우 데이터 보존을 위해 보조 배터리를 가졌으며, 배터리 교환 시 실수로 보조 배터리를 건드려 떨어트리면 모든 자료는 영구히 사라진다. 하지만 펜맨은 그것으로부터 안전하다. 내 생각에 이러한 펜맨의 기술은 국제특허 감인데 실제로는 어땠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이 점 하나 때문에 녀석을 구입했다.
녀석 NEX2는
가로 : 9.2cm, 세로 : 6.1cm(경첩 포함), 두께 : 0.85cm
펼치면 가로는 그대로인 9.2cm, 세로는 12cm로 꽤 콤팩트한 체구를 가졌다.
중요한 저장 용량과 무게는 알 수 없다. 이렇게 가벼운 제품을 측정할 수 있는 저울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넥스2의 능력치(스펙)가 어찌 되는지, 얼마나 좋은 제품으로 업그레이드되었는지, 내가 가진 제품의 회사가 어떤 모습으로 변모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검색창에 '펜맨 NEX2'라고 입력했다. 기대했던 넥스2의 후속 제품은 커녕 회사의 홈페이지조차도 학인이 안되었고, 아래와 같은 부분 부분 발췌된 내용만 확인할 수 있었다. 팩스번호로 봐서 아주 오래된 정보로 생각된다.
"(주)펜맨 - 고비즈코리아
........ 8월 리버티 시스템(주)에서 (주)펜맨으로 상호 변경
1998. 10월 ISO-9001 품질 인증 획득(한국품질인증센터)
1999. 10월 Penman-NEX2 전자사전 개발
2000. 1월... 12월 우량 기술 기업 선정(기술신용보증기금)
주소 : 134-031 서울 강동구 성내1동 448-2
전화 : 471-7602
팩스 : 471-8457
대표 김동주..... (주)펜맨 Home / 홈페이지... "
그리고 이미지 검색에서는 수없이 많은 펜맨의 전자계산기가 보였다. 이제 전자계산기를 주로 제작하는 메이커로 변모한 것이다.
마치 작은 노트북을 여는 느낌과 흡사, 지금 봐도 '디자인은 매우만족'이다. 많지 않은 색상의 배열도 참신하다.
지금은 완전 방전 상태인 녀석에게 전원을 공급하면 어떤 모습으로 부팅될지 궁금하다. 만일, 이 녀석이 문제가 생겨도 펜맨에 전화해 업그레이드된 제품에 새로운 정보를 담아 달라고 할 일은 없지만, 그러고 싶어도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아쉽게도 펜맨의 전자수첩은 이제 역사로만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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