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야경을 촬영하기 위해 남한산성 서문을 오른 것이 정확하게 16번째인지 17번째인지 잘 모르겠다. 하늘이 새파랗게 질린 날씨, 비가 온 다음날,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던 날, 가시거리가 20km를 넘는 날, 멋진 야경사진을 목격한 날, 막연하게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던 날, 비가 오늘날이기도 했고, 눈발이 날리던 날리기도 했던 그날들... 처음에는 멋진 야경 한 장이 목적이었던 것이 실패를 거듭하면서 체념으로 바뀌었고, 남한산성 서문에 오른 것만으로 인한 마음의 평정을 찾는 묘한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이나 눈발이 날리던 날은 남한산성 서문의 야경 포인트에 단 한 사람도 없어, 도착하면 느끼는 평정심은 비교적 쉽게 느낄 수가 있었다.
남한산성을 다녀왔다고 하면 지인들은 의례히 찍은 사진을 보자고 한다. 사진을 보고는 악평을 날린다. "이런 사진은 내 컴퓨터에 2만장 정도 있어!" 잘못 찍었다는 이야기다. 나도 안다. 좋지 못한 기상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왜 올랐는지 물어보는 이는 없고, 무엇을 어떻게 찍었는지, 그 결과가 어떠한지만 관심이 있다. 등산을 마친 사람에게 " 비 오는데 어쩐 일로 등산을 다녀왔어?"가 아니라 "네가 오른 산의 높이는 해발 몇 미터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면..... 씁쓸하다.
요즘은 사진을 찍지 않는다. 카메라 사용법을 잊을 정도다. 그런데 몇 주 전부터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는 충동이 생긴다. 그것도 남한산성에서 단 한 장만 찍어보고 싶었다. 구도, 몇 mm의 망원, 그 외 세팅값도 이미 정해졌다. 실패해도 상관없다. 아니 실패할 확률이 높다. 날씨에 관계없이 시간이 허락되면 출발하는 출사이기 때문이다.
집사람에게 "남한산성에 가서 외식할까?", "얘들아~ 너희들 서울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어디인 줄 알아?" 나름 밑밥을 던졌는데 덥석 미끼를 무는 고기가 없다.ㅠㅠ 추석 연휴 4일, 그중 하루를 나를 위해 쓴다. 가족의 동의도 얻었다. 온 가족이 남한산성으로 달린다. 그리고 과거처럼 어렵게 주차를 하고 필요한 렌즈와 카메라를 챙겨 급히 산행을 시작한다. 과거 추억이 떠오른다. 11월에 피던 개나리를 보고 신기해했던 곳을 지나며 개나리 상태도 확인한다. 그 옛날 자주 이용했던 국청사의 주차장도 시선을 준다. '오랜만'이라는 단어는 '추억의 되새김'과 같은 말인가 보다.
추석 명절에 집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어찌 이곳으로 다 모였는지, 예상과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이미 삼각대로 진을 치고 있었다. 이들은 야경 사진 한 장이 목적일까? 아니면 또 다른 저마다의 목적이 있는 것일까? 여하튼 가족과 함께 오른 남한산성 서문은 또 다른 느낌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여기저기를 다니며 서울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다.
남한산성에 올라 후회를 한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사진을 못 찍어도 사진 외 다른 것을 얻어가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젊은 친구 하나를 만났다. 그 친구는 자리가 없어 당황해하는 나에게 삼각대 놓을 자리를 만들어줬다. 그 친구가 점유한 작은 공간을 나에게 나눠준 것이다. 나 때문에 좁아진 공간만큼 그 친구는 불편했을 것이다. 고마움을 표현하고 최소한의 공간에 삼각대를 펼쳤다. 구도와 세팅을 마치고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에 가로등이 켜지길 기다린다. 그런데 나에게 자리를 할애했던 그 친구의 카메라에서 연사 촬영 소리가 들린다. 음.....
과거 시흥 옥구공원 뒷산인 옥구산에서 야경을 연사로 찍던 친구 하나를 만났다. 야경 촬영법인 장노출에 대한 지식이 없어 보여 기본적인 세팅법을 알려줬더니 바로 진득한 야경 한 장을 찍어내더라는. 그 친구, 너무도 좋아했고, 좋아하는 모습에 나 또한 즐거웠고. 그렇게 카메라를 들면 쉽게 친구가 되었다.
음..... 뭔가를 알려줘야겠는데, 주변에 사람이 많아 혹여 마음이라도 상할까봐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ISO가 몇으로 세팅되어 있어요?", "조리개는 현재 몇인가요?" 이 두 가지 물음에 그 친구의 답이 있었고, 짐작대로 장노출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주요 세팅값을 몇 가지 알려주고 나는 강변북로로 시선을 돌렸다. 시간이 잠시 흐른 후 "감사합니다" 하는 그 친구의 말이 들렸다. 이름도 모르지만 또 하나의 친구를 만들었다. 아래 사진 한 장을 찍고 가족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려는데 그 친구도 짐을 챙긴다. 성수대교 야경을 찍으러 가야겠다고 한다.
자연의 빛은 사라지고 사람이 만든 빛을 기다린다. 롯데월드 몰의 윤곽이 드러나는 빛을 기다리려 했지만, 오늘의 아쉬움은 훗날 또 한 번 올라갈 수 있는 명분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기다림에 지친 가족들과 맛집을 찾아 그들의 입을 즐겁게 해줘야 한다. 그래야 훗날 또 올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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